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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김기옥 주택


[본채]
위치: 전북 군산시 신창동 41-3
총층: 지상 2층
대지면적: 247.3m²
건축면적: 134.21m²
연면적: 215.53m²
매매가: 1억 8천만 원
용도: 단독주택
입주: 협의 가능
방 수/욕실 수: 4/2개 (길과 면한 사무실 1개 별도)
방향: 남향(거실 기준)
난방: 개별난방/도시가스
주차: 0대
주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지역/지구: 일반상업지역/중점경관관리구역
사용승인: 1976. 8. 25.
설계자: 미상

[별채]
위치: 전북 군산시 월명동 3-3
총층: 지상 1층
대지면적: 117.4m²
건축면적: 69.09m²
연면적: 69.09m²
매매가: 7,200만 원
용도: 단독주택
입주: 협의 가능
방 수/욕실 수: 4/2개 (길과 면한 사무실 1개)
방향: 남향(거실 기준)
난방: 개별난방/도시가스
주차: 0대
주구조: 벽돌조
지역/지구: 일반상업지역/중점경관관리구역
사용승인: 1961. 1. 1.
설계자: 미상
군산 김기옥 주택 본채(신창동 41-3) 모습

‘김기옥 주택’은 근대도시 군산의 건축자산이 밀집한 구도심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제가 바다를 매립해 만든 계획도시로, 일찍이 전북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아직까지 당시 목조건물과 근대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어 여행자들의 방문이 많은 곳이다. ‘김기옥 주택’은 1974년 지어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단독주택으로, 당시 군산 도심의 필지 규모를 감안하면 꽤 큰 규모로 지어진 집에 속한다. 현재 월명동 주민센터 바로 앞에 자리하고, 주변부에는 군산의 시간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식당 등이 밀집해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초원사진관과 불과 200미터 거리다.
‘김기옥 주택’은 전북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김기옥 변호사의 사무실이자 자택이었다. 당시는 바로 맞은편인 현 월명성당교육관 자리에 법원이 있었고, 군산에 자리를 잡은 김기옥 변호사는 법원 앞에 사무실과 주택을 마련한 것이다. 1957년 경향신문에 실린 그에 관한 기사를 보면 그를 열정적인 인권 변호사로 묘사하고 있다. 1956년 8.13 지방선거 당시 자유당이 저지른 ‘정읍 환표사건’을 변호하며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그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후 그는 인권변호사로의 활동을 이어가면서 1971년 신민당의 김제 지역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는데, 이때 6~7대 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장경순과 경합했다. 이런 활동배경 때문에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맞붙었던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운동을 위해 군산을 찾았던 김대중 대통령이 김기옥 씨와 함께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기도 했다고 한다.
1975년에는 민주회복국민회의 전북지부 결성 시 고문으로 동참하는 등 이후에도 그는 계속 민주화를 위해 변호사로의 활동과 정치 활동을 함께하였다. 1988년 6월 23일 동아일보에 기고를 통해 ‘긴급조치 구형에 장단 맞춘 재판장, 새 대법원 구성에서 제외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고, 전주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1999년 별세하였다.
‘김기옥 주택’ 본채는 변호사 사무실과 주택을 겸하기 위해 길 쪽으로 두 개의 문을 두고 있다. 마당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는 문과 사무실로 바로 출입하는 문을 두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단독주택이지만 이런 구조를 활용하면 골목에 면해 상업적 용도의 활용도 고려할 수 있다.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도심에 자기만의 마당을 갖고 있으며, 1~2층에 위치한 방의 크기 또한 큰 편이라 군산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의 활용도 가능하다.
또한 본채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별채는 1층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같은 골목 앞뒤로 맞주하여 골목을 중심으로 함께 상호보완적인 용도로의 활용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지적인 사람 김기옥 (경향신문, 1957.2.17)
정읍 환표사건은 선거 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으리 만큼 시시비비가 벌어진 끝에 오는 이십삼일 드디어 언도공판이 전주지법에서 개정되게 되었다. 그런데 동사건에 대한 제칠회까지의 공판과 전후삼회에 걸친 현장검증과 증인심문이 계속되는 동안 누구보다 못하지 않게 애쓰고 사건 진상 규명에 활약한 사람은 동사건 담당변호인들일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 남못지않게 사건을 파고든 사람은 젊은 변호사 김기옥 씨였다. 사명의 변호사 중 수석격 변호인이라고 불리운 김씨는 증인심문 때 상호 모순되는 대부분의 증언을 색출하여 방청인의 폭소와 찬사를 샀던 것이며, 과연 결심과 재결심 때의 변론에서는 피고들의 하고 싶은 말을 빠짐없이 주장해주고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증인들의 증언이 위증임을 드러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전주시내 아니 전국적으로 클로즈업 되었던 김씨였다. 김씨는 퍽이나 열정적이며 이지적인 사람이다. 그는 제일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 개업하고 현재 군산에 사무소를 내고 있는데 앞으로 활약과 진출이 기대되고 있다.


군산 김기옥 주택 별채(월명동 3-3) 모습




아리움 사옥(구 서산부인과)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 11-6
총층: 지하 1층, 지상 5층
대지면적: 159.7m²
건축면적: 116.79m²
연면적: 574.92m²
매매가: 100억 원
용도: 근린생활시설
지역: 일반상업지역
지구: 중심지미관지구 외
구역: 지구단위계획구역
입주: 협의
방향: 남동향(주된 출입구 기준)
교통: 동대문역사문화공원(2호선) 3번 출구 바로 앞
난방: 개별난방/전기
주차: 불가능
화장실: 내부(층별 1개소씩)
기타시설: 베란다
주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사용승인: 1966. 9. 24.
설계자: 김중업


서산부인과 의원 건물은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대표작으로, 1965년 설계해 1966년 준공되었다. 건축주였던 서병목은 김중업의 부인과 친척으로, 병원과 주거 용도의 건물을 의뢰했다. 모서리가 없이 둥글둥글한 곡선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때로는 복도의 폭은 층마다 공간마다 달라지고, 실들의 구성은 자의적인 듯하면서도 자연스럽다. 발코니와 대기실 등의 공간도 마치 태아가 자궁에 있는 모습을 연상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분히 출산과 생명을 상징하는 산부인과의 성격을 상징하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
1층에는 의사와 간호원실, 대기실과 실험실이 있었고, 2층에는 수술실과 5개의 병상, 3층은 주로 병상으로 계획되었으며, 4층에는 의사의 집이 있었다. 램프와 주요 실들로 구성된 메인 볼륨 외에 양측에 달린 발코니가 이 건물의 독창적인 형태를 더욱 강한 인상으로 다가오게 한다. 발코니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할 정도로 얇은 두께로 버티고 선 좌측의 발코니는 마치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 같은 느낌으로, 가우디 건축의 영향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모형에서 보이는 옥상 부분의 굴뚝도 그러한데, 가우디로부터는 자유분방한 곡선을, 꼬르뷔제로부터는 공간을 연결해 주는 빛의 램프를 가져와 다시 ‘김중업스러운’ 건축으로 재창조했다 하겠다.
도로면의 외관은 대부분 당시의 기술로는 소화하기 어려웠을 곡선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원래의 모형을 보면 천창까지 이어지는 유리창이 인상적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콘크리트로 마감되었다고 한다. 당초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단일 용도의 건물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낙후되는 외장을 개선하기 위해 몇 번의 칠이 더해졌다.
– 임형남,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건축사신문 요약 발췌


건물 소개

현 소유자는 1995년 서병목 원장으로부터 건물을 매입한 후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다. 명함 디자인 및 제작 업체 아리움의 대표인 그는 이 건물을 자사 사옥과 임대용 공간으로 섞어 운영해 왔다. 창호는 1995년 후 매수 후 모두 교체했지만 원래의 모듈과 크기를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또 임대용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외부형태처럼 곡선으로 내부공간을 구획했던 벽면은 현재 모두 철거된 상태이지만, 바닥에는 당시 내부 벽면들의 경계를 알 수 있는 여러 패턴과 곡선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1층은 예전에 스포츠용품 매장과 식당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아리움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건물 왼쪽 후면에 있는 출입구는 건물을 사용하면서 차후에 새로 만들어진 부분이며, 이 외에 건물 외관의 형태적 변화는 없다. 2017년 문화재청은 이 건물의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국가 등록문화재 등록 예고를 했지만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아 등록하지 못했다.
본래 이 건물은 산부인과 의원이었기에 내부에 여러 개의 병실과 진료실로 작게 구분되어 있었다. 이것이 현재 아리움 사옥으로 변용되면서 내부의 벽체가 모두 철거되고 층별로 하나의 큰 공간으로 통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범용적인 공간의 쓰임새는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었다.
공공에서 이 건물을 활용할 경우 동대문지역의 여러 문화와 산업을 기반으로 건축과 역사가 어우러진 콘텐츠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건물의 후면으로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고 있는 만큼 여러 역사의 층위가 맞물려 있다. 성북구에 있는 김중업 건축문화의집보다 접근성과 상징성 측면에서 훨씬 더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이 건물의 민간 활용은 건물의 복원 작업이 일정 부분 선행된다면 건축과 디자인, 패션, 문화 등의 분야를 기반으로 1960~70년대 문화를 쫓는 대중들이 문화적 소비점과 맞물려 다양한 형태의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건축가 김중업

김중업은 한국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건축가이다. 1952년부터 르 꼬르뷔제 사무실에서 서양의 현대건축을 직접 체험하고 한국에 귀국한 이후,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해 나갔고, 그의 몇몇 작품들은 세계 건축계에 소개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을 성취하였다. 195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타계할 순간까지 담배 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온 그의 건축물들은 그의 영혼이 함축되어 있는 그 충일함의 표현이었고, 그 강렬한 작품성 때문에 지금도 그 앞에 서면 심원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김중업은 건축가 김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건축에서 거장의 시대를 열어갔던 인물이다.
그는 김중업 건축연구소를 열고 본격적인 건축창작 활동을 하며, 한국의 고전을 현대감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홍익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가르쳤다. 1957년 4월 중앙공보관에서 제1회 김중업 건축작품 전람회를 개최하였고, 1971년 10월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작품전을 열고 그 동안의 작품과 프랑스 정부가 만든 영화 「건축가 김중업」을 선보였다. 안양김중업박물관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리모델링 한 건물로, 김중업이 설계하였다. 또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에 김중업건축문화의집이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김중업의 작품은 아직 없다.


연희동주택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87-12
총층: 지하 1층, 지상 2층
대지면적: 430m²
건축면적: 138.99m²
연면적: 317.18m²
매매가: 63억 원
용도: 단독주택
입주: 협의 가능
방 수 및 욕실수
– 지층: 다목적공간 및 실내차고, 화장실2
– 1층: 방3, 거실, 메인주방+보조주방, 다이닝실, 화장실2
– 2층: 방2, 거실, 응접실(가족실), 부속주방, 워크인 클로젯, 화장실2, 파우더룸
방향: 남동향(거실 기준)
교통: 버스정류장 도보로 3~4분, 홍대입구역(2호선) 차량으로 10분
난방(방식/연료): 개별난방/도시가스
주차: 3대(내부 2대, 외부 1대)
주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사용승인: 1993. 11. 11.
설계자: 범진.다산.성창 종합건축사사무소
리모델링: 2011년 10월 8개월간 완전 개축 및 조경 공사
– 지붕: 천연슬레이트
– 창호: 이건창호(4PAIR CLASS)
– 외부 마루: 브라질산 이페목
– 내부 마감
문틀 및 문짝: 마호가니
원목 계단: 부빙가
마루 및 화장실 타일: FIANDRE사의 향균/향취 대리석타일
– 설비
천장형 에어컨 총 16대 및 스탠드형 에어컨 1대(기사대기실)
실내공기 순환용 덕트 환배기장치
오디오용 전기설비
장수명 LED 전구
보일러 3대(층별 1대)
세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호젓한 주택가인 연희동. 궁동근린공원의 오르막 초입인 연희동 187-12에 자리한 본 단독주택은 1993년 지어진 건물로,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단독주택이다. 현재 소유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건축가로, 2011년 이 집을 매입한 후 직접 섬세하게 리모델링 설계를 하고, 시공까지 직영으로 마무리했다. 외관과 형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내부는 8개월에 걸쳐 새로운 쓰임새와 그들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지금까지 그의 개인 작업실과 주거로 사용 중이다.

원래 이 집의 마당은 지금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했다. 하지만 2011년 건축가는 목재 패턴으로 잘 짜인 대문을 들어서 작은 수공간을 지나 마당에 이르도록 외부공간의 높낮이와 조경을 새로 구상하면서 현재 높이로 마당을 다시 조성하였다. 새로운 마당에 풍경의 운치를 더하는 소나무를 곳곳에 심고, 목재 데크로 영역성과 활동성을 만들어 냈다. 건물의 형태를 보존했지만 지붕은 천연슬레이트로 모두 교체할 만큼 오랜 시간을 내다보고 이 집을 가꿔왔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30년 가까이 된 주택이지만 건축가의 집이라는 배경 때문에 내부공간이 꾸준히 유지 관리되어 말끔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가꿔왔다는 데 있다. 매입 당시 내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급스러운 마호가니 목재의 도어와 몰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방음 방온을 위해 4중 유리창(4 PAIR GLASS)로 설계하고, 미세먼지 경고 시 실내공기 순환용 덕트 환·배기장치를 설치했다. 특히 소유자는 오디오 수집과 LP 음악 감상이라는 취미를 위해 방음과 방온에 각별하게 신경 썼는데, 오디오를 위한 전기설비를 별도로 인입하여 벽에는 110V와 220V의 콘센트를 함께 설치했다.

1층에 베드룸 3개와 2층에 베드룸 2개가 있으며 층마다 거실과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다. 1층 부엌에서는 오히려 내부공간을 줄여 외부에 작은 후원을 조성하고 여기에 대나무를 심었다. 집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 이런 차경요소와 작은 천창을 두어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원래 마스터 베드룸이 1층에 있었지만, 현재 소유자는 이를 게스트룸으로 사용하고 전망이 좋은 2층 방을 마스터베드룸을 사용 중이다. 동남쪽 모퉁이에 자리한 집의 특성상 2층은 전면 시야가 확 열려 있는데, 동쪽으로 안산이 들어오고 남쪽으로는 멀리 연희동 일대가 굽어보인다.

과거 박정희 정권시절에 이 지역에 군인이 많이 살아 장군마을로 불렸다는데, 그래서 유사시 공습을 대비한 지하공간을 각 집마다 두었다고 한다. 이 집 또한 이런 다목적 공간이 지하에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 점포 주택


위치: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25-2
총층: 지상 2층
대지면적: 190.7m²
건축면적: 158.68m²
연면적: 317.36m²
매매가: (거래 완료)
용도: 근린생활시설
입주: 협의 가능
방향: 남서향(주출입구 기준)
교통: 1호선 인천역 도보 4~5분
난방(방식/연료): 개별난방/전기
주차: 불가능
화장실: 내부(남/여 구분)
기타 시설: 기본 조명, 싱크대
융자: 있음
주구조: 연와조 + 목조
사용승인: 기록 없음(최소 100년 전으로 추정)


건물 소개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중국(청나라) 조계지에 화교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되었던 인천 차이나타운. 이곳에는 자장면의 시초로 알려진 공화춘을 비롯해 중국음식점이 즐비한 북성동 원조자장면거리, 삼국지의 중요 장면을 설명과 함께 타일로 제작한 삼국지벽화거리와 역사문화거리 등 개항과 일제강점기 전후로 한국 근대사의 주요 공간적 증표가 여럿 남아 있다.
이런 인천 차이나타운의 한복판인 인천시 중구 선린동 25-2에 남아 있는 본 건물은 조계지형성 당시 지어진 화교의 점포주택으로, 최소 1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7월 11일 우편소인이 찍힌 사진엽서 속에서 거리 왼쪽에 자리한 첫 번째 건물이 바로 이곳이다. 건물 정면은 창호를 제외하고는 거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벽돌조 건축물인데 정면 외벽은 인조석 물씻기를 하여 석조인 것처럼 보인다. 정면은 창문과 출입문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여 다른 주택들과 달리 엄격한 모습을 띄고 있다. 또한 출입구 좌우에는 원형기둥 모양의 장식물을 설치하여 이를 강조하고 있으며, 1층의 출입문과 창문에는 원형 아치를 틀었고, 2층 창문 위에는 인방을 두어 변화감을 연출하였다.
전 소유자 인터뷰에 따르면, 본 건물은 원래 화교인 인삼 교역상의 창고 겸 주택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해방 후 한국전쟁의 화포 속에서도 멸실되지 않고 이어져 오다가 건물 맞은편 해안성당의 교육관으로 사용되었다. 현 소유자는 해안성당으로부터 건물을 매입한 후 보수공사를 거쳐 한동안 전시공간과 카페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했었다.
건물은 1층 층고 또한 4미터에 이를 만큼 높은 층고를 갖고 있으며, 건물 중앙 내부에 사합원의 전형적인 형태인 ㅁ자형 보이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이를 메워 2층 바닥으로 사용하고 있다. 높은 층고와 개방적인 평면, 중앙의 ㅁ자형 보이드를 복원하면 다양한 용도로의 활용이 가능하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지만 육안 검사를 시행했을 때 구조적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전 소유주가 건물을 매입 시 전기설비 공사를 새로 한 만큼 건물의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이라는 지역의 역사성과 이 건물의 물리적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사용자를 찾고 있다.



‘인천 선린동 25-2번지 점포 주택’

근대 개항기에 세워진 벽돌조 2층 건물로 중국인 여성연 소유의 주택을 1995년에 천주교 재단에서 매입하여 현재는 천주교 인천교구 해안성당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인 주상복합건물로 중국의 사합원(ㅁ자 구조)주택이다.
전면은 인조석으로 마감하면서 여기에 줄눈을 두어 얼핏 보면 석조 건축물로 보이기도 한다. 출입구는 석조 문선 위에 타원 아치를 두었고, 문선 좌우에는 주초, 원형 기둥 및 주두 형상의 돌을 부착하고 출입구 하단에는 2단의 반원 계단을 두어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외관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3개의 베이로 된 벽돌 벽면 그대로 노출된 건물로 (중국인 마을의 다른 건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발코니와 청풍낙양 등이 없는 순수 벽돌조 건물이었다. 베이 사이는 벽돌을 내쌓아 붙임 기둥을 만들었고, 1, 2층 개구부는 각각 반원 아치와 평아치를 설치했다.
– 손장원, ‘근대기 한국 화교의 주거 양식’, 「와이드」 2011년 5~6월호 발췌


성북동 그룹가 사옥 및 주택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30-542
총층: 지하 1층, 지상 2층
대지면적: 825m²
건축면적: 224m²
연면적: 513m²
매매가: 별도 문의 (02-6396-4901)
용도: 주택 및 근린생활시설
입주: 협의 가능
방 수 및 욕실 수: 2층 주택 – 방3, 욕실3, 거실, 주방, 다이닝룸
방향: 남향(거실 기준)
교통: 4호선 한성대입구역 차량으로 5분
난방(방식/연료): 개별난방/도시가스
주차: 5대
융자: 없음
주구조: 벽돌 조적조
사용승인: 1985. 8. 21
설계자: 강석원(전 그룹가 건축사무소 대표)
수상이력: 서울특별시건축상(1985)



건물 소개

삼청터널과 삼청각을 지나 대사관로로 200여 미터를 내려오다 보면 성북동빵공장 바로 왼쪽으로 그룹가 사옥 및 주택을 볼 수 있다. 담쟁이넝쿨로 싸인 붉은 색 벽돌로 길과 마주한 이 건물은 1970년대부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한국적 모더니즘의 형성에 기여했던 건축가 강석원의 건축사무소이자 자택이었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자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악산 자락이 남쪽 급경사를 이루며 계곡을 이루고 있는 위치답게 건물은 확 트인 남쪽 계곡과 맞은편 서울한양도성을 바라보며 훌륭한 시각적 개방감과 자연경관에 둘러싸여 있다. 설계자이자 건축주인 강석원 또한 이 자연경관을 애지중지 받아들이면서 주거공간과 업무공간 두 용도가 공존할 수 있는 내부공간을 설계하였다. 집 안 어느 곳이라도 산과 나무, 하늘과 태양 모든 자연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중앙의 선룸을 중심으로 지하 1층은 건축사무소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층에는 그의 작업실과 응접실, 2층에는 주거인 침실과 거실을 배치했다. 무엇보다 건물 중앙에 배치된 선룸은 남쪽 계곡의 풍광과 빛과 하늘을 실내 깊숙이 끌고 들어오는 친환경적 요소로 외부와 내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공간이자 휴식공간이다. 계곡을 향해 남쪽으로 조성된 테라스와 선룸에서는 이런 자연경관을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다. 동쪽과 서쪽 입면부를 징크로 새로 마감한 것 외에는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축가 강석원

1938년 서울생. 대한민국 건축사,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가, 호주 캔버러시 건축가. 1957년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에 입학하고 1961년에 졸업했다. 제10회 국전에 <육군훈련소 계획>을 출품하여 건축으로서는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조르주 앙리 팽귀송 건축연구소에 들어가 12년간 일하며 1970년 후반에는 그의 파트너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였고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병행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서울 그룹가를 설립하여 업무・교육・종교・주거・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의 프로젝트를 설계하였다.
여러 작품을 통해 한국건축가협회상, 대한건축사협회상, 서울특별시건축상 등을 받았으며, 특히 에스모드 빌딩으로 제1회 김수근문화상 건축부문을 수상했다. 홍익대학교, 고려대학교, 인제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국건축가협회장(1996~1998)을 지내면서 대내외 건축사업을 수행하였다.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첫 번째 커미셔너로서 전시회를 치렀으며 한불문화협회 회장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교류에도 힘쓴 바 있다. 1997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기사단장)과 1998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옥관훈장)을 수여받았다. 최근에는 UIA 2017 서울세계건축가대회 명예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자료출처: 『건축가 강석원』, 제대로랩,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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